금영보
Artist Note
제가 처음 작업을 시작할 당시에는 서구의 미술이 곧 현대미술이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저 또한 자연스럽게 소위 앵포르맬 성향의 추상 작업으로 작가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 작업은 어찌해서 5-6년 이어갔지만 이후 흥미를 잃어 작업을 중단하는 지경까지 가곤 했습니다.
그때 비로소 자신의 정체성에 맞는 그림을 그려야 재미있게 오래 작업할 수 있겠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구상 회화로의 전환은 많은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무엇보다 작가가 동력으로 삼을 근원적인 무언가가 절실 했습니다.
이즈음 분청과 민화 ,판소리 등을 열심히 들여다 보았는데
제 생각으로 큰 기교 없이 고졸한 아름다움과 분방한 자유로움이 우리의 ‘미의식과 기질’이 아닐까라는 나름의 답을 얻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리고자 하는 대상은 흔한 일상 같은 것입니다. 삶에서 손 때 묻히던 것들에 대한 소박한 감정들입니다.
화면 구성은 몇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한 두 이미지로 화면을 꽉 채우거나 나열하는 방식으로 화면을 구성합니다.
둘째로는 화면의 원근을 무시하고 평면화 합니다.
셋째는 형태는 사실적 비례에 구애받지 않고 변형시킵니다. 대상들 간의 관계나 비율도 주저없이 깨뜨립니다.
이것은 사실적 재현보다 그리는 이의 상상력이나 염원이 중요했던 민화의 특성을 제 그림에 차용한 제작 방법들 입니다.
재료는 지금은 캔버스에 유채로 작업하지만 한때는 한지죽을 두드려 붙인 지지대에 돌가루 철가루 연탄재등 자연물에서 만든 재료만 사용하여 작업하기도 했습니다. 너무 번거롭고 언제 까지 할 수 있는 방식은 아니어서 다시 유채로 돌아 왔습니다. 물감층이 두텁한 그림들은 그때의 자연 안료 질감과 색감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에 대한 평가로 종종 민화를 현대화한 작가로 평가 하기도 하는데 그건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민화의 형식이 아니라 민화를 만들어내는 그 서민적인 마음을 차용 하기 때문입니다.
어수룩하고 친근하고 너그러워지는 그림을 그리게 되는 이유입니다.
우리만의 삶의 방식으로 축적 되어 온 이 오래된 미의식은 현재에 유용한가?라는 질문을 나 자신에게 수없이 해오고 있습니다.
예술에는 미래도 과거도 없다는 피카소의 말이 아니더라도 한국성이 드러난 현대미술을 만들어 내는 데에는 가장 중요한 모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가 간의 경계가 모호해진 현재에는 오히려 민족의 정체성이 요구 되어지는 문화 전쟁이 치열 합니다.
한국적 미의식의 회복이 세계화된 현재에 작가에게 독창적인 경쟁력을 갖게 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