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태규
Artist Note
숲과 대지에 관한 몽상
요즘 작업의 주제는 ‘흐린 풍경(Blurry Scene)’이다.
주지하다시피 우리 말에서 ‘흐린’이라는 형용사는 여러 의미로 쓰인다. 비 내리고 눈보라 치는 날씨를 우리는 흐린 날이라고 한다. 새벽안개 자욱한 강가에서 언뜻언뜻 보이는 버드나무 가지와 갈대숲을 바라보며 우리는 시야가 흐릿하다고 한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나 지나온 일상을 회상하며 우리는 기억이 가물가물할 때도 흐릿하다고 말한다. 더구나 얼마 전 읽었던 책 속 줄거리가 오락가락할 때에도 기억력이 흐려졌다고 말한다. 우리의 감성 기억들 역시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분명하게 떠올려지지 않는다. 분명치는 않지만 나이 듦에 비례하듯 기억은 갈수록 흐릿해진다는 것을 시인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줄곧 사생(寫生)을 근거로 세계를 담았던 내게는 무엇보다도 흐릿해진 시야만큼이나 주변 세계에 관한 새로운 이해, 즉 그것은 다의성의 세계를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세계는 그대로인데 나의 생리적 조건의 변화를 슬퍼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본디 우리의 시각은 언제나 감각적 한계를 지녔기 때문이다. 사람의 시각은 앞에 펼쳐진 세계를 총체적으로 감각하기란 불가능한데, 실제로 어떤 사물을 지각한다는 것은 두 눈의 초점이 어떤 특정 사물에 닿는 것이고, 나머지 주변은 시야에서 흐릿해진다. 그리고 지각의 대상을 바꾸면 앞서서 보았던 사물은 흐릿한 주변에 포섭되어 버리고 만다. 결국 우리가 조망하고 옮기는 풍경의 표현이라는 것은 사실 우리의 시각에 포섭된 대상의 몽상적 조합에 불과할 뿐이다. 습관적으로 떠올려지는 화가의 몽상에는 기억과 체험, 그리고 관념까지도 포함한다. 따라서 실제의 표현이라는 우리의 믿음은 가스통 바슐라르가 말하는 몽상 이미지에 불과하거나, 아니면 흐릿한 기억의 형상화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