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수
Artist Note
창백한 우화(寓話)로 들려주는 삶의 구조
김상수의 상상속의 화면 안에는 간결한 구성 속에 개, 고양이, 말 등의 동물들이 등장한다. 이 동물들은 작가가 화면에 구축해 놓은 구조물 속에서 자리를 잡고는 화면 이곳저곳으로 시선을 던진다. 그러나 그 시선은 빗나가며 대상없는 응시가 되어 공허하다. 어떤 대상으로도 향하지 못하는 시선의 덧없음과 질서 잡힌 정교한 구성의 대조는 이질감과 긴장감을 낳는다. 여기에 채색의 색조는 불안감을 더한다. 때로는 시작과 끝을 알 수 없이 복잡하게 얽힌 미로와 같은 구성 속에서 때로는 간결한 직선으로 구획된 건축물이나 의자 안에서 덧없는 시선을 보내는 이 동물들은 현대사회의 냉혹한 질서 속에 갇힌 우리의 삶의 조건을 떠오르게 한다.
<공존하는 시간>이라는 대명제 아래 풀어 나간 시리즈들의 소제목을 훑어보면 작가가 보편적으로 접할 수 있는 인간적 감정들, 그리움, 연민, 기다림 등의 감정을 동물들의 동작과 시선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존의 시간 - 영욕의 자리>에서는 사회적 하이어라키가 직접적으로 표현된다. ‘자리’의 효과적인 은유수단인 의자를 중심에 두고 각자 자리를 잡고 있는 동물들 가운데 누군가는 다른 누구의 자리를 탐내고, 누구는 안분지족하고, 누구는 지금 여기가 아니라 저 하늘 너머 다른 세상을 꿈꾸는 듯 시선을 던지고 있다. 우리가 일상의 경쟁 속에서 흔히 마주하는 감정이 강렬한 발언이 아니라 동물들의 잔잔한 표정과 눈빛으로 처리된다.
성쇠와 영욕이 엇갈리는 자리에서 희로애락을 느끼며 앉아 있는 모습, 꼬리가 무수히 많건만 머리는 하나뿐인 상황, 지금 여기에 존재하지 않는 그 무언가를 막연히 기다리고 그리워하는 동물들의 모습은 우리의 사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 김상수의 그림은 동물의 외피를 입은 우화인 셈이다.